‘가부장’이 없는 가정, 아버지가 사라진 가족들의 이야기 전형적인 가부장적 요소의 가족을 보여주면서, 그로부터 탈피해나가는 과정을 유려하게 다뤘다. ‘4인 가족’으로 명명되는 정상 가족 신화를 깨트리려 하면서도, 그것을 아예 해체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여전히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가지는 가치를 수긍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K-픽션 스물네 번째 작품. 백영옥은 단편소설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첫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다양한 소설과 산문들을 통해 현 시대의 '연애들'을 대변하며 독자들에게 자리매김한 작가다. 백영옥은 <연애의 감정학>을 통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SNS로 연결되어 헤어져도 헤어질 수 없는 초연결 사회의 연인들에 대해 고찰한다. 태희는 애인인 종수와 헤어진 후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수영을 시작하고, 일본어 공부를 하고 사내 스터디모임에 가입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하지만 태희의 바쁜 일상 가운데 어김없이 치고 들어오는 종수의 소식들과 더불어, 종수의 SNS를 통해 그의 근황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태희의 욕망이 충돌하고 그 사이에서 태희는 고민과 갈등을 반복한다. 안서현 문학평론가는 <연애의 감정학>의 해설에서, 백영옥 작가가 그려내는 이 이야기는 이 시대의 사랑과 풍속은 물론, '삶'을 일깨우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영원한 본질도 짚고 있다고 평한다. '전 남자친구 증후군'이라는 해석의 병에 걸린 태희가 그를 털고 일어나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차분히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때 마주하는 사랑의 해석, 그것이 '감정학'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평한다.
2019년 4월, K-픽션 스물다섯 번째 작품으로 우다영의 <창모>가 출간되었다. 우다영은 2014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창모'는 다수의 사람들이 기피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요주의 인물이다. 창모는 학창 시절에도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으며 상식적으로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기도 한다. 창모의 친구인 '나'는, 그런 창모에 대해 별다른 감정 없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하는 일상을 보낸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창모>의 해설에서, 우다영 작가는 우연에 내포된 기미에 관심이 많으며 어떤 일이 생길 낌새에 예민하여 그를 소설에 드러내는 것에 탁월하다고 이야기한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진 '창모'라는 인물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나'라는 서술자로 하여금 단지 '창모'를 공포의 대상으로 규정할 것이냐 혹은 인간적인 선의를 보여줄 것이냐에 고민하게 하는 기로를 예로 들며, '무수한 (불)가능성의 우연적 확률은 우리에 의해 변한다'고 평한다.
K-픽션 스물여섯 번째 작품, 정지아의 <검은 방>. 언제나 과거와 현재의 그늘을 직조하며 그 속에서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선보이곤 하는 정지아 작가는 이번 K-픽션 <검은 방>을 통해 삶에 관한 깊은 통찰을 다시금 독자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검은 방>의 주인공은 아흔아홉 살의 노파로, 남편과 지리산에 입산하여 남부군으로 싸우다 가족과 친구들을 잃고 옥살이를 한다. 감옥에서 나온 이후에도 노파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으나 마흔둘에 생긴 딸아이를 '현재'이자 자신이 지켜야 할 '등불'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렇게 아흔아홉 해를 살아온 노파는, 삶의 마지막 자락이 다가왔음을 실감하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회상에 들어간다. 정은경 문학평론가는 <검은 방>은 30년 전부터 시작된 정지아 작가의 '긴 전투'라고 명명한다. <검은 방>은 빨치산 경력을 지닌 노모와 딸의 일상을 담은 이야기지만, 정지아 작가는 이런 거울과 같은 서사를 통해 '눈송이' 같은 경쾌한 삶의 태도를 시적인 감각으로 변형시켜 놓았다고 평했다.
형은 내게 마야를 건네주었다. 나는 마야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마야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내 어깨에 걸쳤다. 거의 경구 형의 얼굴을 하고 있는 조그만 생명체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마시자 달콤하고도 비릿한 우유 냄새가 끼쳐 왔다. 나는 형에게도, 형수에게도, 아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소리로 마야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아가야, 이름이 뭐라고?”마야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Gyeong-gu passed me the baby. I held Maya gingerly in my arms. She leaned against my shoulder with her face tilted sideways. Burying my nose into the nape of her neck, I inhaled a whiff of sweet, soapy milk from that tiny person resembling Gyeong-gu. In a hushed voice, I whispered in Maya’s ear out of the hearing of Gyeong-gu, Sun-yeong, and my wife Eun-a.“What’s your name?”Maya smiled without a word.-「도쿄의 마야」중에서 From “Maya in Tokyo” 지금의 나는 몇 명의 재일교포 친구가 있다. 어떨 땐 거의 일본인 같고 어떨 땐 거의 한국인 같기도 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티가 나는 사람들. 숨을 수도 있지만 숨지 않기도 하는 사람들. 그저 ‘재일(在日)’,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I now have a number of jaeil gyopo friends. They are told they appear practically Japanese or practically Korean in different circumstances. They still become conspicuous at times. They may choose to hide yet refuse to do so. They are jaeil (在日) in the merest sense of being in Japan.-작가 노트 중에서 From “Writer’s Note”누군가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은 해석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준경은 마야를 안으면서 깨닫는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해석하고 편집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그 자신뿐이다. 그래서 준경은 마야의 목에 코를 묻고 “달콤하고도 비릿한” 마야의 냄새를 맡으면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마야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아가야, 이름이 뭐라고?”While holding Maya in his arms, Jun-gyeong realizes that identity cannot be acknowledged by way of interpretation. Only the person in question can interpret and edit their own identity. Hence, Jun-gyeong buries his nose into the nape of her neck, inhaling “a whiff of sweet, soapy milk” while whispering out of the others’ hearing: “What’s your name?”-해설 중에서 From “Commentary”
K-픽션 스물여덟 번째 작품. 부조리한 세계의 불안과 공포를 집요하게 그려내는 편혜영 소설가의 의 작품 『홀리데이 홈』을 한영 대역으로 만나볼 수 있다. 영문 번역은 편혜영의 대표작이자 셜리잭슨상 수상작인 『홀』을 번역한 김소라 번역가가 맡았다. 『홀리데이 홈』은 군인이었던 이진수가 군대 내 납품단가 조작 사건에 가담한 책임을 홀로 떠안은 후 전역한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후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진수에게 삶의 무대는 바뀌었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는 증거들이 아내 장소령에게도 포착된다. 부동산에 내놓은 집을 보러온 박민우가 이진수를 기억하며 술 취해 던지는 말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 듯 불안을 증폭시킨다. 군대에 있었을 때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인가가 있었음에 분명하지만 그 장면은 분명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인아영 문학평론가는 이진수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고 그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중요한 것은 이진수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와 무관하게 소설이 견고한 형식으로 짜여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이진수가 저지른 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 자체”라고 말한다. 이 부조리한 세계는 인간들에게 내용이 아닌 형식에 복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그 세계가 집약되어 있는 군대에서의 삶을 완벽하게 체득하여 “권위와 위계”를 칭찬으로 여길 뿐인 이진수에게는 딜레마가 없다. 딜레마는 이 모든 것을 그의 아내 장소령의 시선으로 볼 때만 감지된다. 그러한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것의 섬뜩함, 자신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전달될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당신이 슬퍼하기를 바란다. 뒤뜰을 가꾸는 서인의 뒷모습을, 캥거루를 타이어 레버로 내리치는 진우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봐주기를 바란다. 지나가버린 사랑을 온 힘을다해 움켜쥐고 있는 이들을 안쓰럽게 여겨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랑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언젠가는 사랑에 다가갈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해주기를 바란다.I hope you feel grieved while reading the story. Even after you finish reading, I hope, you will never stop gazing after So-in tending the backyard or Jin-wu striking the kangaroo down with the tire lever. I hope you can be sympathetic towards the couple who are clutching with all their might at their love that is no more. I wish to hear you say: By not giving up on love, we may be able to come across it someday.- 창작노트 중에서 From Writer’s Note하나의 시간이 끝났음을 선고하는 일은 단순히 미래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흘러간 시간이 되어버렸을 때 그것은 추체험되기 시작한다. 이 서늘한 종언의 서사는 ‘지나가버린 미래’일지라도 그것에 대한 동경이 쉬이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더 이상미래 없음’의 시점에서도 그 이후에 대한 어렴풋한 기대가 지금 어떤 관계를 완전히 끝장내지 못함을, 미래로 향하는 삶의 불확실성이란 그런 식으로 삶을 지속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조금씩 알아간다.Pronouncing the end of a time does not simply mean the failure to have the anticipated future arrive. Once something passes into the bygone times, it then begins to be re-experienced in one way or another. The terrible pronouncement of death paradoxically alludes to the fact that the aspiration for the future is hard to die even after it becomes the ‘bygone future.’ And now, at this moment of ‘no more future,’ some expectation for the ‘thereafter,’ faint as it may be, holds one back from ending the present relationship once and for all. Thus, we learn little by little that is the way the uncertainty of the future has us carry on with our lives.- 선우은실(문학평론가) Sunwoo Eunsil(Literary Critic)
Contents:
골드러시 Gold Rush창작노트 Writer’s Note해설 Commentary비평의 목소리 Critical Acclaim
K-픽션 서른 한 번째 작품. 2021년 심훈문학대상 수상작인 장강명 작가의 소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이 한역대역본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은 ‘에이전트’라는 스마트 기기가 상용화된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에이전트’는 소설의 제목과 같이 이용자가 바라는 대로 현실을 순화하거나 미화하여, 또 완전히 왜곡하여 그가 ‘보고 싶어하는 세상’만을 전달하는 기기이다. 에이전트를 착용한 채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진짜’로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야기하는 윤리적인 문제들을 제기하며 소설은 진행된다. 소설 속 교묘하게 설정된 여러 요소들은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그것을 진짜인 것처럼 믿고 살아가며 그 믿음에 근거해 음모론을 펼치기도 한다.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세계만이 옳고 다른 모든 주장은 폐기해야 할 거짓 선동에 불과하다. 왜 사람들은 허구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일까. 우리는 진짜로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확신할 수 있을까. “리얼리티는 단 한 명의 사람의 눈으로 보는, 단일한 세상이 아니라, 여러 세상들 사이의 치열한 소통 과정에서 출현하는 동적인 사태일 것이다. 타인의 우주가 탄생할 때 나의 우주도 함께 탄생한다.”(노대원 문학평론가)전 세계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한국문학, K-픽션〈K-픽션〉은 최근에 발표된 가장 우수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엄선하여 한영대역으로 소개하는 시리즈로, 한국문학의 생생한 현장을 국내외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기획되었다. 매 계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책 속으로
내가 받아들이기 편하게 수정해도 되는 현실의 경계가 어디인지 알 수 없고, 그런 힘이 생겼을 때 내가 얼마나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중요한 윤리적 고민인데 그 기계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기업들은 그에 대해 물론 아무 생각이 없을 테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세계가 처한 상황이다.I didn’t know where the bounds of such a reality, revised to my comfort and liking, would be, nor did I know how much control I would be able to exert if I had that sort of power. This is an important ethical concern, but of course the companies that create and market such technology would give no thought to this at all. This is the situation we are facing in the modern world today.창작노트 중에서 From Writer’s Note『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작가가 걸어온 두 길이 만나는 접점에 위치한다. 즉, 언론인 출신으로서 사회 변화를 포착하는 탁월한 감각, SF 소설가로서 미래 기술의 가능성과 그 한계를 서사화하는 재능 모두가 발휘된 단편소설이다. 특별히, 이 소설은 ‘에이전트’라는 미래의 도구에서 사회와 기술의 접점이 발견된다.“The World You Want to See” is located at the point the writer’s these two paths meet. In this story, both Chang’s excellent sensibility as a former journalist in capturing social change as well as his talent as a sci-fi writer for narrativizing the possibilities and limits of futuristic technology are on full display. In the futuristic “Agents,” especially, we can see where society and technology come together.해설 중에서 From Commentary
Contents: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The World You Want to See창작노트 Writer's Note해설 Commentary비평의 목소리 Critical Acclaim
K-픽션 서른두 번째 작품. 2022년 심훈문학대상 수상작인 정한아 작가의 소설 <지난밤 내 꿈에>가 한영대역본으로 출간되었다. 영문 번역은 스텔라 김 번역가가 맡았다. 정한아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질병과 돈, 그리고 은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소설은 한센병력이 있는 외할머니에서부터 이어지는 3대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외할머니는 화자의 엄마를 버린 적이 있고 그 때문에 모녀의 관계는 냉랭하기만 하다.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외할머니를 찾아갔을 때도 환대는커녕 모진 말을 듣고 상처를 받는다. 도무지 화해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세 사람이지만 외할머니가 받게 된 보상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지닌 삶의 무게를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다. 이 작품은 2022년 발표되어 여러 문학상 후보로 언급되었으며 심훈문학대상으로 선정되었다.
A poignant, radiant tale of a mother's ceaseless devotion to her son, The Snowy Road is the story of a family that loses everything due to one son's abuse of alcohol. This tragedy does not shake the mother's resolve to continue to work hard for her one remaining son, making his happiness her sole goal in life. The son behaves contemptuously, though, oblivious to his mother's sacrifice, until the day he learns of her long walk home along a snowy mountain road years before when he left home.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식을 보살핀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도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난이나 죽음이나 이별 그리고 전쟁과 같은 가혹한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식에 대한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그러한 어머니들의 가슴에는 한이 맺힌다. 『눈길』은 가난 때문에 사랑이 더 큰 고통이 되어버린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Prize-winning author Choe In-ho paints a dizzying portrait of what living in a modern, self-centered society entails in his breakthrough short story Tower of Ants. The plot centers around a young man who is going nowhere in his 9-5 advertising job when, one day, his apartment is suddenly infested with ants. The story soon becomes a battle for sanity as the thousands upon thousands of insects slowly take over the man's life, his apartment and his mind.
『개미의 탑』은 집안의 개미들 때문에 고생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하여, 조직 사회의 일원이 되어 개미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우울하게 보여준다. 똑같은 모습으로 일사분란하게 잠시도 쉬지 않고 단 것을 찾아 모으는 개미들처럼, 각자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당한 채 비인간적인 조직의 질서 속에서 돈과 쾌락을 얻기 위해 질주하는 모습- 그것은 바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