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pathetic husband and a wife's slow awakening to a harsh reality share center stage in Suh Eun-young's fascinating short story A Walk in the Mountains. Partly a post-modern detective story of a wife trying to find the cause of her husband's disinclination to function in society, it is also a spiritual exploration that culminates in the husband's nirvana-like revelation, only to have the wife come to grips with a disturbing truth.『산행』은 소설을 쓸 수 없는 한 소설가의 절망과 극복에 대한 이야기와 남편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기만을 바라며 온갖 고통을 감내했던 아내의 절망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한다. 소설가가 동네 체육관의 잡역부로서의 새로운 꿈을 찾았을 때, 아내는 “아무 것도 아닌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 좌절 속에서 절망한다. 삶의 비극적 아이러니는 『산행』이 지닌 또 하나의 의미이다.
신선한 개성과 활력이 넘치는 젊은 작가 단편작 시리즈 'K-픽션'.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박민규 작가의 <버핏과의 저녁 식사>(Dinner with Buffett)이다.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이자 미국의 5대 갑부인 워런 버핏이 매년 개최하는 오찬 이벤트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버핏과 함께 오찬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는 경매에 부쳐지는데, 경매 최고가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기록하며 많은 지원자들이 몰린다. 이번 경매의 낙찰자는 172만 달러를 기부한 한국의 28세 청년 안(Ahn). 한국의 젊은 청년 안(Ahn)과 버핏 사이의 오고가는 대화를 통해 작가는 불가항력적인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은 그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그리며 태연하면서도 신랄하게 자본주의의 중심을 파고들고 있다.
신선한 개성과 활력이 넘치는 젊은 작가 단편작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최근 발표된 가장 우수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엄선한 은 한국 문학의 생생한 현장을 국내외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자 기획되었다. 오늘의 한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개성 넘치는 신진 작가들의 최신작으로 이어지는 은 우리 문학의 가장 핫한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은 박형서 작가의 「아르판」(Arpan)이다.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이 오롯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태국과 미얀마 접경 고산 지대에 사는 아르판이라는 한 사나이와 나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원본과 사본을 가르는 경계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예술, 문학의 본질에 대해 되묻고 있는 수작이다.
최근 발표된 가장 우수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엄선한 K-픽션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은 손보미 작가의 「애드벌룬」(Hot Air Balloon)이다. 타인의 상처와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어떻게 우리와 함께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남의 슬픔을 잘 이해하고 자신을 제어할 줄 안다.” 파토스를 모조리 철수시키겠다는 듯 담담하고 건조하게 기술되는 그녀의 문장에서 독자들은 철필로 꾹꾹 눌러쓴 타자의 일대기들을 조심스럽게 발음하는 법을 배운다. 타인의 상처와 죽음이 어떠한 형식의 이야기로 출현되어야 하는가를, 그리하여 산 자들이 그러한 죽음들과 어떤 형식으로 ‘공-존재’하고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다.
신선한 개성과 활력이 넘치는 젊은 작가 단편작 시리즈 'K-픽션'.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은 오한기 작가의 <나의 클린트 이스트우드>(My Clint Eastwood)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리는 ‘황야의 무법자’의 그 멋진 건맨이자 일련의 작가주의 영화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감독이다. 보수적 정의감과 마초적 강인함을 대표하는 그가 고전적 서사를 고집하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나’의 펜션에 볼품없는 허풍쟁이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서부극에서 연출된 ‘영웅’과 그의 실제 삶의 이력이 겹쳐지고 있는 지점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소설이다.
「K-픽션」다섯 번째 작품『이베리아의 전갈』. 평생을 회사(국가정보기관)에서 무탈하게 근무하여 해외 지부의 책임자로 평화로운 퇴직만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전임 지부장에게 모욕을 당한 후, 회사와 정면으로 맞선 옐로, 그런 옐로를 감시하며 암살을 꾀하는 브라운과 블랙. 갈수록 공고해지고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서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가를 묻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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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전갈Dishonored창작노트 077Writer’s Note해설 091Commentary비평의 목소리 107Critical Acclaim
『양의 미래(Kong’s Garden)』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어릴 적부터 늘 알바를 해온 ‘나’가 실종사건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황정은 작가 특유의 담담한 필치는 주인공이 느껴야 할 슬픔이나 억울함을 독자가 대신 느끼게 하며 작품 속 깊이 독자를 끌어당긴다.
가장 자주 펼쳐본 것은 서른다섯 나이에 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은 소설가의 단편들이었다. 여러 소설가의 단편을 모은 책 안에 그 소설가의 단편 두 개가 실려 있었다. 초기에 쓴 것과 죽을 무렵에 쓴 것이었다. 첫 번째 것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었으나 두 번째 것은 병신 같았다. 별것을 가지고 강박적으로 사로잡히고 울적해하고 비참해하다가 마침내는 더는 글을 쓸 만한 힘이 없다,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괴롭다는 문장으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다른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읽을 당시에도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그 두 개의 소설을 반복해서 읽었다. 소설가는 마지막 순간에 걱정되지 않았을까. 내가 죽을 때는 어떨까를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병신 같은 건 싫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마지막에 병신 같은 걸 남기고 죽는 건 싫다. 걱정이 될 테니까 말이다. 세상에 남을 그 병신 같은 것이.The Stories I read the most often were written by a novelist who had killed himself by jumping into a river when he was thirty-five. Two of his stories were included in a short-story collection of different writers. One was written in the early stage of his career and the other around the time he committed suicide. The former was compact and powerful, but the latter was pretty stupid. In that one, the narrator was obsessed with something trivial and he became depressed and miserable. The story ended with lines like I don’t have strength to go on writing and I can’t go on living like this.I can remember no other details of the story. Although I didn’t enjoy reading it, I kept on reading. I think I wondered if the writer hadn’t been worried right before he killed himself. I also wondered what it would be like when I died. I thought I wouldn’t want to be so stupid. I especially did not want to die and leave a stupid piece of writing behind. I didn’t want to worry about it, whatever stupid thing I’d leave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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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전갈Dishonored창작노트 077Writer’s Note해설 091Commentary비평의 목소리 107Critical Acclaim
신선한 개성과 활력이 넘치는 젊은 작가 단편작 시리즈 'K-픽션' 7권. 'K-픽션'은 현대 사회의 변화의 흐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소설에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대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고, 특유의 발랄함과 새로움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회의 변화된 현실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의 치열한 노력들이 배어있다. 72살의 할머니 ‘나’는 올드타운에서 산책을 다니고 노인복지센터에서 마련해준 일을 소일거리 삼아 유유자적 살아왔으나, 복직해야 하는 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6개월 된 아기를 맡게 된다. 행복한 고역에 지쳐가던 ‘나’는 어느 날 놀이터에서 ‘대니’를 만난다. 스물네 살 건장한 청년의 모습을 한 돌보미형 로봇인 대니는 ‘나’를 처음 본 순간 “아름다워”라는 말을 건네는데….
한국의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천명관의 소설 『퇴근(Homecoming)』. 현대 사회의 변화의 흐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K-Fiction Series」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10%의 슈퍼리치들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담요’라 불리는 90%의 실업자들은 ‘일’과 거기에 부수된 일상, 존엄 등에서 제외된 채 정부에서 나눠주는 바우처를 받아 최소한의 생계만을 유지하고 있는 미래사회. 90%에 속하는 주인공 ‘그’는 천식을 앓고 있는 아이의 약을 구하기 위해 굶다시피 해서 바우처를 모으지만 그마저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슈퍼리치에게 아이를 입양보내기로 결정하는데…….한국문학의 새로운 성취로 기록될 젊은 작가의 최근작을 엄선하여 매 계절마다 국내외에 널리 소개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영토를 확장해나가는 작업을 지속하고자 하는 「K-Fiction Series」. 하버드 한국학 연구원 등 세계 각국의 한국 문학 전문 번역진들이 참여하여 번역과 감수, 그리고 원 번역자의 최종 검토에 이르는 꼼꼼한 검수 작업을 통해 영어 번역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작품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서도 해외 영어권 독자들이 읽을 때에 유려하게 번역된 글을 읽을 수 있게 하여 작품에 대한 감동을 그대로 전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작가들의 독특한 스타일과 작품 세계와 함께 최근 한국 문단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흐름을 엿ㅂ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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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Homecoming 007창작노트 Writer’s Note 081해설 Commentary 089비평의 목소리 Critical Acclaim 103
일상의 흔들림, 그 흔들림을 포착한, 이 시대 가장 젊은 이야기들『옥화(Ok-hwa)』. 현대 사회의 변화의 흐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K-픽션》의 아홉 번째 작품이다. 조선족 작가 금희는 「옥화」를 통해 탈북자와 조선족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섬세하게 구분하며 한국소설에 빈 칸으로 남아 있던 많은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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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화 Ok-hwa 007창작노트 Writer’s Note 081해설 Commentary 093비평의 목소리 Critical Acclaim 109
신선한 개성과 활력이 넘치는 젊은 작가 단편작 시리즈 'K-픽션' 10권. 'K-픽션'은 현대 사회의 변화의 흐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소설에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현대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고, 특유의 발랄함과 새로움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회의 변화된 현실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의 치열한 노력들이 배어있다. 인간 사이의 이해와 소통의 문제를 젊은 감각으로 그려온 작가 백수린의 문제의식이 인상적으로 집약된 작품이다. 주인공 그녀의 삶에는 결정적인 두 지점이 있다. 동생을 잃어버린 십칠 년 전의 한 순간, 그로부터 삶이 천천히 잠식되어 왔음을 깨닫는 십칠 년 후의 한 순간. 그 시간의 간극을 작가는 서사보다 묘사로, 소설이 아닌 시로 아름답게 그린다.
신선한 개성과 활력이 넘치는 젊은 작가 단편작 시리즈 'K-픽션' 11권. 시리즈는 세계 문학으로 가는 ‘직행열차’가 되려고 한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성취로 기록될 젊은 작가의 최근작을 엄선하여 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통해 매 계절마다 국내외에 널리 소개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영토를 확장해나가는 작업을 지속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중부의 소도시로 입양된 알렉스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알렉스는 지나간 사람들과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린다. 알렉스도,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는 당신도 각자의 사연과 곡절을 안고서 ‘올드 맨 리버’를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차가운 듯 따뜻한, 이장욱 작가 특유의 문장이 인생의 비밀을 살며시 드러낸다.
K-픽션 시리즈 7권. 하버드대학교 한국학 연구원, 코리아타임즈 현대문학번역상 수상 번역가 등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에 참여한 바 있는 여러 명의 한국문학 번역 전문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번역의 질적 차원을 더욱 높이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번역은 제2의 창작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작품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서도 해외 영어권 독자들이 읽을 때에 유려하게 번역된 글을 읽을 수 있게 하여 작품에 대한 감동을 그대로 전하였다. 영어 번역에는 하버드 한국학 연구원 등 세계 각국의 한국 문학 전문 번역진들이 참여하였으며, 번역과 감수, 그리고 원 번역자의 최종 검토에 이르는 꼼꼼한 검수 작업을 통해 영어 번역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는 적의 존재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착한 사람들’의 무력하고 불쌍한 싸움을 이기호 특유의 ‘딴청’으로 은은하게 그려내는 작품이다. 작가가 「창작노트」를 통해 ‘정신’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산문’이 오며 ‘정신’은 ‘적’을 냉철하게 분간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한 바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더욱 다채로운 의미를 얻을 수 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금요일에 있었던 일들을 거의 잊은 상태였다. 그랬다가 여자아이의 문자메시지 덕분에 회식 때 나눴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다.거의 다 왔는데 좀 늦을 거 같아요, 지하철이 중간에 멈췄어요. 죄송합니다.15분가량 지각한 여자아이는 은영을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그날은 오전에 일이 많아서 화장실을 갈 틈조차 없었다. 은영이 떠안게 된 회계 업무는 분량 자체는 대단치 않았지만 일들이 월말에 몰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봤더니 여자아이가 무료한 표정으로 마우스 버튼을 까딱까딱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또 뮤지컬과 일본 여행 정보 검색하나? 이번 마감을 하고 나서 천천히 회계 일을 좀 가르쳐 볼까?)On the following Monday, all the events of Friday had been practically forgotten. But after receiving a text message from the girl, everything that was said at the dinner came back to ?n-y?ng.I’m almost there but I think I’m going to be a bit late. The subway train suddenly stopped on the tracks. Sorry.The girl came about fifteen minutes late, nodded once in the direction of ?n-y?ng, and sat down at her desk.It was so busy that morning that there wasn’t even time to go to the washroom. There wasn’t a lot to do for the accounting tasks ?n-y?ng had taken over, but it all had to be done at the end of the month. ?n-y?ng raised her head and looked across the room to see the girl looking bored, click-clicking the mouse. (Is she looking up musicals or Japan tours again? After I finish this month’s, should I slowly start training her in accounting?)
멍청아!-세상에, 나름 최선을 다해 봉사한다 생각했는데.시리가 진심으로 섭섭한 듯 말했다. 다시 기회를 주겠단 식으로 시리에게 내 고통에 의미가 있냐고 물었다. 시리는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 늘 그러듯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당신도 영혼이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정말 좋은 질문’이라고, “그런데 전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라고 딴청을 부렸다. 자꾸만 매끄럽게 도망가는 모양이 못마땅해 나는 그즈음 가장 절박했던 질문을 던졌다.-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시리가 되물었다.-84p작년(2014) 봄 이후,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거나 어렵게 해나간 걸로 안다. 동시대 시인과 소설과, 비평가가 말이 무너진 자리에서 가까스로 말의 의미와 쓸모를 찾아 나섰고, 그렇게 몇 마디를 떼는 데 몇 개절이 걸렸다. 그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들의 글을 열심히 찾아 읽으며 어느 순간 내가 동료들의 말에 기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함께 어떤 시대를 건너고 있는지 배웠다. (중략) ‘죽음’을 넘어서는 말은 될 수 없을지라도, 그 불가능 앞에서 묵묵히 예의를 지키는 말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104p (창작노트 중에서)김애란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인상적이고 간결한 묘사를 통해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느낌’을 확연하게 불러일으키는 천재를 지닌 작가이다. 그러한 재능은 야광 팬티를 입은 채 달리기를 하는 아버지를 그리는 경우에도, 혹은 빚에 짓눌러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가는 우리 시대 청춘의 모습을 그리는 경우에도, 예외 없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고는 한다.
K-픽션 15권. 김민정 소설. 김민정은 2012년 제4회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2013년 문학 분야 차세대 예술 인력으로 선정된 바 있는, 실력이 입증된 신인 소설가이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 단행본으로 '문학 패러다임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탄탄한 반어적 구조 위에서 문학이 자본의 논리에 휩쓸릴 수도 없으며, 휩쓸려서도 안 됨을 뜨겁게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정적이면서도 묘한 울림을 주는 문체로 문학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설가 김금희의 '체스의 모든 것'이 열여섯 번째 K-픽션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체스의 모든 것'은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나, 노아, 국화의 관계를 통해, 인생의 불행과 자신의 실존에 대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한때는 저항의 아이콘이자 '이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으나, 몇 번의 패배를 겪고 기성세대로 향하는 세 인물의 이야기는 익숙하고 일상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일상 속의 첨예한 감성을 기민하게 낚아 올리고 있다. '창작노트'에서 김금희는 "이 소설이 독해되지 못할까봐 걱정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몽환적인 구어체의 문장들로 집필 과정을 소개한다. 차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지만, 모두가 그런 마음을 누르며 살아가고 있는 일련의 불행들이 체스판을 갈팡질팡 가로지르는 문장들 사이사이에서 고개를 든다. 이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라며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 김금희의 작가적 태도이다. 하지만 그 불행을 포착하는 데서 소설은 그치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킹이 체스판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과 체크메이트 상황에서 합의나 항복을 통해 승부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이 소재를 가져왔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따스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삶을 그려온 작가 정한아의 새 단편이 2017년 2월, 열일곱 번째 'K-픽션'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할로윈'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과거와 미래를 보듬는 일을 하는 점성술사이자 타로카드 마스터인 신비로운 한 여인과의 만남으로,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다시 삶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주인공이 타인의 아픔과 사연을 헤아리기 시작하면서, 함께 고통의 유대로 나아가는 모습은, 소중한 사람의 죽음과 이별이라는 커다란 상실 후에도 아픔을 안은 채로 다시 일어나 시작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인간의 숙명과 삶에 대한 긍정을 일깨운다.
열여덟 번째 'K-픽션'으로 출간되는 작품은 소설가 최은영의 <그 여름>이다.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한 소설가 최은영은 특유의 순하고 담백한 문체로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2016년 7월 출간된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그해 말 교보문고 소설 전문 팟캐스트 '낭만서점'에서 진행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은영의 최신작이자 'K-픽션' 열여덟 번째 작품인 <그 여름>은 열여덟 살의 두 소녀가 예기치 않게 찾아온 사랑이라는 감정에 흔들리는 한때의 여름, 그들이 겪는 일상의 작은 균열들을, 맑고 투명한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담아낸 소설이다. 소설 속 두 소녀 '이경'과 '수이'는 흔치 않은 사랑을 나누며 타인의 시선을 조심해야 했던 시기를 지나 점점 두려워하던 시선과 자신에 대한 판단에 예전만큼 겁내지 않기 시작한다. 스무 살이 된 그녀들은 서울로 이주해 한 명은 대학에 입학, 다른 한 명은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를 배운다. 각자에게 서로 다른 활동 반경이 생겨나면서 생겨나는 새로운 즐거움과 사소한 오해들, 그 속에서 둘 사이의 감정의 변화가 밀려온다.
K-픽션 19권. 구병모 소설.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빼어난 서사적 역량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기존 청소년 소설의 범주를 넘어서며 주목받은 구병모는, 이후 장편소설 <아가미>, <한 스푼의 시간>,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등을 발표하며 흥미로운 서사를 펼쳐보였다.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는, 지속적으로 신간을 선보이며 꾸준한 판매 지수를 유지하던 한 작가가 사회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신작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이게 된 후, 논란에 대처하는 출판사와 작가의 면모를 추적한다. 소설가 P씨는 1년에 평균 1권꼴로 6년째 소설을 출간했다. 꾸준한 판매 지수를 유지해 온 P씨의 책들이 케이블드라마와 영화, 웹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P씨는 웹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가지고 있었다. 화자는, 그 무렵의 논란에 대해 P씨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이런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의 일상을 그의 토막글과 사진만으로 어디까지 파악할 수 있을지, 하는 호기심으로 P씨의 계정을 처음 팔로우하게 된다. 작가가 휩싸인 논란은 사회파 스릴러로 분류할 수 있는 그의 신작에 대한 윤리적 비난으로, 소설가의 사회적 타자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P씨의 편협함과 낡은 세계관에 독자들은 경악한다. 작가 P씨를 둘러싼 논란은, 논란이 일고 논란의 당사자가 진정성을 담은 해명에 '뒤늦게' 나서지만 사태가 진정되기보다 악화되고, 비웃음과 맹비난이 거셌다가 관심이 식어버리는 과정 속에서 어느새 흐지부지되고 마는데
K-픽션 스무 번째 작품. 권여선 소설. 소설가 권여선은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등단했으며,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어쩌면 비루할 수도 있는 우리네 인생들을 소설에서 아름답게 되살리며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모르는 영역>에서는 잠시 우리를 뒤흔들고 작은 파문을 남긴 채 사라져가는 일상 속 순간들을 그렸다. 주인공 명덕은 새벽에 공을 치고 혼자 클럽에서 빠져나와 다영에게 전화를 건다. 다영은 도자비엔날레 때문에 여주에 있었다. 초승달 모양의 낮달이 하늘에 떠 있고, 낮술의 취기와 봄날의 나른함이 겹쳐 선잠에 들었다 깨어난 명덕은 다영을 보기 위해 여주로 향한다. 다영은 기행 다큐를 찍는 일행과 식당에 먼저 도착해 있었고, 명덕은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이후, 봄날의 1박 2일 동안 명덕과 다영을 둘러싼 '낮달' 같은 시간들이 소설 속에 담긴다.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소설은 아내의 죽음 후 더 소원해진 부녀의 관계를 짧은 봄날의 시간 안에서 보여주면서 '이해와 오해' 혹은 '근본적 무지(無知)'의 영역에 얽힌 인간사의 오랜 이야기 속으로 합류하는데, 여기서 문제는 그 영역 속으로 한발 한발 진입하는 권여선 소설의 예민한 촉수와 리듬, 문체의 미묘한 힘이 아닌가 한다."라며 이 소설을 극찬했다.
“……눈은 녹고 있었어요. 그러자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머무는 내내 눈이 왔었잖아요. 한국이 눈으로만 덮인 곳이라는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 건 어쩐지 아쉬울 것 같았거든요. 눈은 내가 사는 곳에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난 그냥, 무작정 거리를 걸었답니다.” 마리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 “원래 나는 1월에 오기로 했었죠. 그런데 말이죠…….” 마리가 잠깐 말을 멈추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그냥 나는 그때, 올 수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그녀는 여러 차례 짧게 숨을 쉬었고 나는 그녀가 울음을 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리는 오랫동안 호흡을 가다듬었고 나는 잠자코 기다려주었다.“……Snow was melt-ing. I thought, I want to walk where there is no snow. It snowed the whole time I was in Korea. I thought it would be too bad if I went back to Fin-land only with memories of snow in Korea. There is much snow where I live. So I walked around.” Marie smiled faintly. …… “I was going to visit in January.” Marie paused, then continued in a whisper, “But I just… I couldn’t.” She took a few short breaths in succession and I realized she was trying to hold back her tears. She took her time gathering herself, and I waited.-[4월의 눈] 63~68쪽가끔씩 우리는 현실
을 가리거나 덮는 낯선 존재나 낯선 정경을 맞이하곤 합니다. 그 밑에 도사리고 있는 일상은 잠깐 환기되거나 잊히지만 실상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죠. 그러나 현실을 덮고 있던 장막이 사라진다고 해서 일상이 전과 완전히 같은 모습으로 재현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는 천천히 바뀌기 마련이니까요. 겉모습도 마음도 사람들의 관계도 조금씩은 달라져 있습니다. 녹는 눈처럼, 계절의 변화처럼 말이죠.We sometimes come across strange beings or unfamiliar scenes that conceal our reality. The daily life that lies in wait under a veil is unseen or forgotten for a while, although it is there all the same. But our everyday life will not be the same again when the veil is lifted. Sometimes always changes, although slowly. Appearances, emotions, and relationships are altered slightly, the way melting snow and the turn of the seasons change things.-[4월의 눈] 75~77쪽 (창작 노트 중에서 From Writer’s Note)참혹한 고통 안에 잠복해 있는 유일한 다행은, 그것을 가진 이들이 자신과 닮은 타인의 마음의 무늬를 헤아릴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고통을 언어 삼은 공감에는 어떤 번역도 필요치 않습니다. 국경도 성별도 나이도 가로질러버리는 음악처럼, 춤처럼 고통에서 비롯된 위로는 미처 발설되지 않아도 서로 안에 스며들 수 있습니다. 예컨대 당신이 당신과 같은 병을 앓는 나를 만나 아무 말 하지 않고도 서로의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The only real relief, lying dormant in harrowing pain, is that it gives us some insight into the veins and currents that flow inside the heart of someone with a similar grief. Empathy that speaks in the language of pain needs no interpreter. As music and dance can remove barriers between different people of countries, so compassion born of pain can reach another without words. Just as if you meet someone who is ailing in the same way as you, both of you can feel each other’s pain without say-ing anything.-[4월의 눈] 92~93쪽 (해설 중에서 From Commentary)
K-픽션 스물두 번째 작품. 강화길의 <서우>. 강화길은 2017년 제8회 젊은 작가상, 2017년 제22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괜찮은 사람>과 <다른 사람>을 출간하며 활동 중이며, 여성 혐오, 데이트 폭력 등 여성 문제와 관련된 작품을 꾸준히 창작하고 있으며, 이 여성의 목소리를 '스릴러'라는 양식의 실험을 통해 꾸준히 사랑받는 작가다. <서우>를 통해, 한국 여성대중이 공유하는 불안과 공포의 성격을 다시 한번 조망한다. 얼마 전 주현동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던 여자들이 잇따라 사라지는 사건을 겪고 난 후, 주현동에 사는 '나'는 불안에 떨며 택시에 탄다. 자신이 탄 택시 운전사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안도하며 평정을 되찾지만, 택시에 오르자마자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기억과 악몽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택시 운전사는 알 수 없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기 시작한다. 오혜진 문화연구자는 <서우>의 해설에서, 강화길은 여성에 대한 소문과 평판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로 인해 '피해자' '희생자' '걸레' '백치' '마녀' '거짓말쟁이' 등과 같은 전형적인 이미지로 고정 소비돼온 여성인물들의 반역과 복수를 유려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의 연장선에서, '도시 하층계급에 속한 여성'이라는 존재 조건 자체가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자 괴담의 화소가 되는 사회에서라면, <서우>의 주인공은 결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사이코패스, 즉 세계를 선과 악으로 이분화함으로써 성립하는 스릴러의 세계에서 '순정한 악'조차 될 수 없음을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고 덧붙인다.
‘가부장’이 없는 가정, 아버지가 사라진 가족들의 이야기 전형적인 가부장적 요소의 가족을 보여주면서, 그로부터 탈피해나가는 과정을 유려하게 다뤘다. ‘4인 가족’으로 명명되는 정상 가족 신화를 깨트리려 하면서도, 그것을 아예 해체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여전히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가지는 가치를 수긍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